SYNAGOGUE LETTER 2025. 03. 01.

예밀에서 온 편지 19

SYNAGOGUE LETTER 2025. 03. 01.

우수가 지나고 경칩도 며칠 안 남았는데 두꺼운 겨울 코트를 벗을 수가 없이 날이 몹시 찹니다.
형제자매님 모두 이 겨울을 잘 넘기고 계신가요.

겨울은 그 기세가 아무리 등등해도 따스운 햇살을 앞세워 오는 봄날을 막을 수가 없지요.
이 겨울 그 어느 해보다 힘겹게 보내는 대한민국에 3월과 함께 봄날다운 봄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월이 참 어렵네요. 나라가 어수선하니 물가는 쉬지 않고 오르고, 실질 소득은 줄어들고, 주머니는 자꾸 가벼워지는 힘든 시기. 그 어느 때보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자꾸 늘어가는 게 여러분도 보이시지요.
엘로힘의 도우심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즘, 부지런히 주변을 살피고 돌아봐야겠습니다.

회중교훈서에서 다비드의 아들인 선포자, 지구 상에서 좋은 것을 누리고 살았던 그 분이 의외의 단어들로 입을 열었습니다.

“공허들 중의 공허입니다,” “공허들 중의 공허이니; 모든 것이 공허입니다.”
(회중교훈서; 혹은 선포자 1:2)

차고 넘쳐 아쉬울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자리에 계셨던 분의 입에서 “공허”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떨 때 ‘공허’를 경험하십니까, 어떤 때 ‘공허’를 고백하게 됩니까?
오랫동안 노력한 일이 무산되었을 때? 오랫동안 마음을 쏟으며 기대한 일이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날 때일까요.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도 늘어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니: 이것 역시 공허입니다. ( 회중교훈서: 혹은 선포자 5: 10)

공허를 증가시키는 많은 것들이 있으니 사람이 더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공허한 삶의 모든 날들을 그림자처럼 보내는 동안, 지금 물질생명에서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 누가 압니까? 태양 아래서 자기 뒤에 무슨 일이 있게 될지 누가 사람에게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회중교훈서: 혹은 선포자 6: 11,12)

잘됨의 날에는 기쁨이 넘치게 하고 , 역경의 날에는 곰곰이 생각하십시오: 엘로힘께서도 하나를 다른 하나의 맞은 편 너머로 고정하셔서,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뒷일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회중교훈서: 혹은 선포자 7: 14)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음에 일어날 뒷일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잘됨의 날에는 기뻐하고, 역경의 날에는 깊이 생각하며 착하신 엘로힘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그 과정을 통과해내야 합니다. 지나고 나면 우리 입에 다시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니까요.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여 이 모든 것을 밝히 말하는데, 의인들이나, 지혜로운 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들이나, 다 엘로힘의 손 안에 있으며: 아무도 자기 앞에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사랑도 알지 못하고 미움도 알지 못합니다. (회중 교훈서; 혹은 선포자 9: 1)

그 무엇이든 그대의 손이 행할 일을 찾는 대로, 있는 힘껏 그것을 행할 것은; 그대가 들어가게 될 무덤 속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이나, 지혜도 없기 때문입니다. ( 회중교훈서: 혹은 선포자 9:10)

이제 그대는 그대의 젊은 날에 그대의 창조주를 기억하십시오, 아직 해악의 날들이 오지 않는 동안, 그대가 말하기를, “나에겐 아무 낙이 없다”,고 할 그러한 해들이 다가오지 않는 동안; 태양이나, 광체나, 달이나, 별들이, 어두워지지 않는 동안, 비 온 뒤에 구름들이 되돌아오지 않는 동안에 그렇게 하십시오. ( 회중교훈서: 혹은 선포자 12:1, 2)

아직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대의 창조주를 기억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선포자가 합당한 말씀들을 찾아내고자 애썼으니: 기록된 것은 올바르며, 곧 진리의 말씀들이었습니다.

지혜로운 자들의 말들은 가축 모는 막대기와 같고, 집합체들의 스승들이 단단히 박아놓은 못들 같으니, 다 한 목양자께서 주신 것입니다. ( 회중교훈서: 혹은 선포자 12:10,11)

우리가 전체 문제의 결론을 들어봅시다: 엘로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십시오: 이것이 사람의 전체의무입니다. ( 회중교훈서: 혹은 선포자 12: 13)

그러므로 이제 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해야 할 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어지러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요즘,
더 이상 새 생명이 아닌 것으로 자신의 삶을 채워나가는 어리석음으로 “공허”를 겪고 뼈저린 고백을쏟기 전에 지혜롭게 선택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비블로스 말씀에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안타깝게도 선포자는 보았고 알았고 전해주었지만, 본인은 그렇게 살지 못해 역사적으로 그 후에 벌어진 그 비극적인 일들이 기록으로 남아 우리까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는 저로서는 그 다음 단계인 본 것을, 감사하게도 눈이 열려 알게 된 것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실제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것은 내려 놓더라도 전체의무를 지키는 삶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