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AGOGUE LETTER 2024. 07. 14.
예밀에서 온 편지 11
7월 여름 장마기간 답게 비는 무섭게 내리고 그치고 나면 끈적끈적한 더위.
한국도 기온이 체온정도로 올라가는 곳도 있으니 올해는 더위가 어느 정도가 될지 겁납니다.
지구 어느 곳은 몇 십년 만의 더위로, 또 어떤 곳은 한 번에 쏟아진 비로 인해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뉴스가 이어지며 기후변화에 대해 한 목소리로 걱정합니다.
온세상이 이렇게 어수선한데 형제자매님들 가내는 모두 평안하신지요.
“너희는 지배권주를 찬양하라. 그분의 성소에서 엘을 찬양하며: 그분의 권능의 튼튼한 공간에서 그분을 찬양하라. 그분의 강력한 활동들에 대하여 그분을 찬양하며: 그분의 탁월한 위대하심에 따라서 그분을 찬양하라(시들의 비블로스 150:1,2).“
믿음의 선배들 중에서 베르오이아인들은 그것이 그러한지 날마다 비블로스를 탐색하였다 하였습니다(사도들의 활동들 17:11). 이런 모습을 보고 데살로니카인들보다 더 고귀하다고 묘사했습니다. 모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말씀을 받아들였다 했습니다.
이런 반응은 누구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근거는 확실히 다르고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한 동안은 흉내도 내볼 수 있겠지만,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 새로 태어남을 통해 엘로힘의 생명이 확실할 때만이 지속 가능한 일이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귀한 특권입니다. 형제자매님들도 특권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이런 거야 말로 누구나가 아니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이니 특권 중에 특권이지요.
비블로스를 같이 읽고 엘로힘 이름을 부르며 그 언저리에 늘 있었다 하더라도, 과연 내 안에 새로운 생명, 엘로힘의 생명이 분명한지는 언제라도 꼭 확인해야 하는 중요한 일, 선행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 무엇보다 내 안에 이 생명이 분명하게 확인이 되었다면,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오는 말이 감사로 덮혀가지요. 때로는 가슴 벅찬 감사가 넘치다보면 아버지 엘로힘의 살피심, 풍성하신 착함에 찬양이 절로 나옵니다.
물론 우리는 일상에서 방지턱 정도의 불편한 상황을 수도 없이 만나고, 때로는 숨쉬기조차 힘든 도저히 못 넘어갈 것 같은 요지부동한 벽, 언덕도 만나게 됩니다. 이럴 때 나를 괴롭히는 상황에 대해 씨름하고 불평하며 지내게 되지만, 아버지 엘로힘의 보호가운데 어느덧 그 고비를 넘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뒤돌아보면 그 시간에도 엘로힘께서는 결코 손을 놓치 않으셨다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 함께 계시며 데리고 나와 길을 잃지 않게 된 것을 알게 되고요, 결국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가 터져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이땅을 살아갑니다.
“지혜가 밖에서 외치고; 그녀가 길거리들에서 자기 목소리를 발하며:
그녀가 성문들의 입구들에서, 떠드는 군중의 선두에 서서 외치며:
도시 안에서 자기 말들을 발하여, 말한다,
언제까지, 너희 우둔한 자들아, 우둔함을 사랑하겠느냐?
비웃는 자들은 자기들의 비웃음을 기뻐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겠느냐?
너희는 나의 책망에 돌이켜라:
주목하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고, 나의 말들을 너희에게 알게 하겠다(금언들1: 20- 23).
그렇습니다. ‘나의 말들을 너희에게 알게 하겠다’ 하셨습니다
오늘날 내가 알아듣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엘로힘께서 기다려주신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받은 자로서, 이해력을 먼저 받은 자로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향해 말해야 합니다. 아직 세상이 끝나지 않았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치지 말고 간청하며 끊임없이 말해야 합니다.
나 자신도 그들만큼 어리석었고, 비웃었고, 우둔했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엘로힘께서는 우리들 입에서 터져나오는 감사와 찬양을 받으실겁니다.
매일 같이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엘로힘의 일, 비블로스를 성취해가시는 것을 보며 살게 하십니다.
감사가 넘치는 증인의 삶이 곳곳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도 늘 같은 마음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