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 경배하다
영으로와 진심으로
경배는 형식과 예절을 강조하는 예배가 아니라, 영과 진심으로 가치를 돌려드리는 삶의 태도이다. 합당한 섬김을 종교적 예식으로 오역하는 대신, 비블로스 낭독 중심의 모임을 통해 참된 경배를 회복해야 한다. 설교 중심의 예배는 헛된 경배가 될 수 있다.
엘로힘은 한 영이시다: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은 반드시 영으로와 진심으로 경배해야 한다(요 4:24).
God is a Spirit: and they that worship him must worship him in spirit and in truth.
낱말 설명
개역개정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예배와 경배는 비슷해 보여도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엎드려 절한다는 뜻의 배(拜)는 같지만, 예(禮)가 예절과 의식, 형식을 뜻하는 반면, 경(敬)은 진실하고 참된 공경을 뜻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배가 예식과 형식을 강조한다면, 경배는 진실한 마음의 태도를 강조합니다. 전자가 겉으로 보이기 위한 행위라면, 후자는 진실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영어 워쉽(worship)은 가치(worth)를 인정하는 행위(ship)를 뜻하며, 그리스어 프로스쿠네오, 세보마이, 라트류오, 유세베오 등도 합당한 가치를 돌려드리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특히 프로스쿠네오는 공경하는 마음에서 실제로 엎드리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종교적 의식이나 예식과는 거리가 먼 개념입니다. 따라서 워쉽을 예배로 번역하면 안 되고 경배라 번역해야 맞습니다.
예배는 숭배개념에서 비롯되었고, 숭배는 우상숭배 본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숭배대상의 비위를 맞추고 아부, 아첨하려는 본능적 사고에서 수준 낮은 숭배개념이 야기되었고, 그 결과물이 종교적 의식, 비법 혹은 비술, 제사례, 통과례, 만트라, 기도, 굿 등 각종 제식행사들인데, 다 겉치례에 불과합니다. 기독교 예배 개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경배가 예배로 변질된 계기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때부터라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기독교인 행세를 하면서 속으로는 태양신 숭배자였던 그가 태양의 날인 일요일에 태양이 중천에 뜨는 11시부터 기독교 예배행사를 제정, 공포하면서부터 기독교 예배가 공식화되었는데, 일요일을 주일로 부르는 것만 다르고, 11시 예배는 동일합니다.
원래 경배는 종교적 예식 같은 특정 행사나 모임 개념이 아닙니다. 실생활에서 창조주의 가치를 존중하고 찬양하는 삶 자체가 경배인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 개념으로 변질되면서 이스라엘 레비 성직체계에 빗대어 합리화하려 하였지만, 그것은 그림자와 예표였을 뿐 실체는 크리스토스이십니다. 크리스토스 안에서는 경배가 있을 뿐 예배는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11시 예배를 영어로 서비스(service)라고도 하는데 레비 성직자의 봉사행위를 예배로 둔갑시킨 것이었습니다. 봉사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라트류오, 라툴기아는 경배 자체가 아니라 경배에 뒤따르는 섬김을 가리킬 따름입니다. 따라서 서비스(라툴기아)는 섬김이라 번역하고 예배라 번역하면 안 됩니다. 가령 로마인들 12장 1절의 reasonable service를 영적 예배로 번역한 개역개정은 오역이며, 합당한 섬김으로 번역하여야 마땅합니다.
경배는 영으로와 진심으로(in spirit and in truth) 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겉모양에 불과한 제례, 제식 행위인 예배가 아니고, 영의 진실인 삶의 경배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로 번역한 개역개정은 경배의 본질을 크게 왜곡한 것입니다. 영(성령)과 진리로라는 번역 역시 본 의미에서 빗나갔습니다. 여기서는 성령과 말씀의 진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영과 진심이라는 경배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경배는 엎드림과 삶을 의미하며, 엘로힘 가족의 모임은 비블로스 낭독 중심의 모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비블로스로 돌아온 후 시나고그를 시작한 이유이며, 시나고그 연장선상의 왕가모임도 원래 비블로스 낭독 중심의 모임이었습니다.
따라서 비블로스 진리에 따라 예배는 마땅히 경배로 대체되어야 하고, 모든 예배모임들은 비블로스 낭독 중심의 모임들로 대체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
기독교 예배모임은 비블로스 진리에 따라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배개념은 경배개념으로 바뀌어야 하고, 목사설교 중심의 예배모임은 비블로스 낭독 중심의 친교모임으로 바뀌어야 마땅합니다.
그래야 진리의 영께서 왕가들에게 하시는 말씀의 음성을 각자가 들을 수 있고, 진정한 말씀중심의 친교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의 가르침인 설교중심의 예배모임에 머물러 있으면, 헛된 경배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