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standing 이해력
영적 분별력과 혼의 이성
이해력은 추상적인 총명이 아니라 근거 위에 서서 지탱하는 합리적 이성의 힘이다. 비블로스가 말하는 이해력은 자연인의 지능을 넘어 저자의 마음을 읽어내는 역량이며, 이는 거룩하신 숨과의 소통을 통해 작동한다.
내가 그에게 지혜와, 이해력과, 지식과, 온갖 종류의 기술에서, 엘로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였으며,(탈 31:3)
And I have filled him with the spirit of God, in wisdom, and in understanding, and in knowledge, and in all manner of workmanship,
그러나 사람 안에는 영이 있으며: 전능자의 숨주입이 사람들에게 이해력을 주십니다(욥 32:8).
But [there is] a spirit in man: and the inspiration of the Almighty giveth them understanding.
낱말 설명
이해력(understanding)이란 낱말은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이것을 굳이 총명(聰明)이라는 어려운 낱말로 번역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해하다(understand)란 동사의 동명사인 이해하기(understanding)는 비블로스 용례에서 이해의 기능과 역량을 뜻하는 이해력을 가리킵니다. 굳이 어려운 명사형 낱말들을 택하기보다는 동명사형의 한 낱말로 쉽게 표현하고자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로에흐(roeh), 레콰크(leqach), 비나흐(binah), 그리스어 누스(nous), 수네시스(sunesis), 디아노이아(dianoia) 등은 대언자의 시각, 설득력, 지혜, 지능, 분별력, 총명 등 어려운 개념의 명사들이었습니다. 이 모든 명사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쉬운 개념의 동명사로 정리한 것이 영어의 이해력(understanding)입니다.
영어 언더스탠드(understand)는 밑에(under) 서다(stand) 즉 밑에 서서 지탱하고 뒷받침한다는 의미입니다. 합당한 근거와 증거로 뒷받침되면 비로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같은 합리적인 이해의 기능과 역량이 바로 이해력(understanding)인 것입니다.
인간에게 이해력이란 혼의 기능 중에서 이성(理性, reason)의 기능에 해당됩니다. 이성이 발달할수록 이해력이 증가합니다. 이해의 대상이 주로 지식(知識)인 고로 지능(知能, intelligence)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성이 이해하는 지식의 출처입니다.
일반 자연인의 이해력은 스스로 수집하고 채택한 지식에 근거하는데, 그 출처가 아담의 생명인 만큼 아담의 지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출처가 새 아담인 크리스토스의 생명인 경우 옛 아담의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크리스토스의 지식에 이르고, 진리의 영께서 주시는 새로운 영적 이해력에 도달합니다.
엘로힘의 숨주입(inspiration)으로 주어진 비블로스 기록이야말로(팀둘 3:16) 진리의 영과 인간의 혼이 만나서 함께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진리의 영이 인간의 영에 빛을 비추면 영의 눈이 열리고 영적 분별력이 생기며, 연이어 혼의 이성이 반응하여 새로운 이해력에 도달합니다. 이것이 전능자의 숨주입이 인간에게 이해력을 주시는 일련의 과정입니다(욥 32:8).
비블로스에서 진리의 영은 곧 거룩하신 숨(Holy Ghost)입니다. 진리의 영이 인간의 혼과 소통하기 위해 인간의 숨과 함께 숨 쉬는 거룩하신 숨이 되신 것입니다. 크리스토스의 사람들(christians)이 비블로스를 읽을 때 거룩하신 숨과 인간의 숨이 만나서 함께 숨 쉬면서 영의 소통과 혼의 소통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숨과 숨의 소통을 통해서 엘로힘의 마음이 크리스토스의 사람에게 전달됩니다. 그렇게 그분의 생각과 의도, 그분의 뜻을 인간이성이 바르게 이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연인은 이러한 숨과 숨의 소통이 없기 때문에 그분의 생각과 뜻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자연인이 비블로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근본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직 진리의 영께서 이해력을 열어주셔야 비로소 비블로스 기록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뤀 24:45).
이해력의 대표적인 사례는 비블로스 번역입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책은 단연코 비블로스입니다. 대부분 바이블 혹은 성경으로 알고 있지만, 비블로스가 정확한 책 이름입니다(맛 1:1). 현재 3,7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60억 가까운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는데, 문제는 누가 번역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크리스토스의 사람으로 확인된 밥티스마 성도가 번역하여야만 올바른 비블로스로 신뢰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바른 이해력 없이는 바른 비블로스 번역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숨과 함께 숨 쉬면서 저자이신 창조주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영적 이해력이 있어야만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른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은 거룩하신 숨과의 소통이 없는 사람들이 단지 학자(신학자)나 성직계급(신부, 목사)이라는 이유 때문에 감히 비블로스 번역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밥티스마 성도라야 비블로스 학자가 될 자격이 있고, 비블로스 번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번역한 경우 저자이신 창조주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여 창조주의 뜻과는 거리가 먼 번역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성경들, 바이블들이 있지만, 참다운 밥티스마 성도들이 번역한 바른 비블로스를 분별하여 선택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물론 밥티스마 성도가 아닌 학자들, 성직계급들도 얼마든지 번역을 할 수는 있지만, 자연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연인의 이성도 나름 이해력이 있으나, 어디까지나 그림자이지 실체는 아닙니다. 무늬는 바이블이고 성경이지만, 실체가 빠진 번역본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밥티스마 성도는 믿쁨의 실체가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시적 증거를 갖게 되고(히 1:1), 영적 실체를 이해하는 영적 이해력으로써 창조주의 마음과 뜻을 읽어낼 수 있기에 올바른 비블로스 번역이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
나에게 자연인의 이해력만 있는지, 아니면 크리스토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영적 이해력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영적 이해력이라 함은 거룩하신 숨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크리스토스의 사람들의 이해력을 말합니다.
세상의 영과 소통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령 오순절주의자들이 성령, 성령 하지만 거룩하신 숨과는 거리가 먼 것은, 그들의 주장들이 비블로스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숨(Holy Ghost)은 비블로스와 일치하는 진리의 영입니다.
다른 영과 소통하는 자들도 자연인의 이해력을 초월할 수는 있으나 밥티스마 성도들의 영적 이해력과는 전혀 다릅니다. 가령 점치는 자들이나 심령술사들이 그러한데, 안타깝게도 이들과 같은 수준의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오순절주의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만큼 이해력이 중요하고, 바른 영적 이해력이 대단히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