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agogue 시나고그

비블로스 성취의 출발점

synagogue 시나고그
Photo by Levi Meir Clancy / Unsplash

시나고그는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엘로힘 가족의 모임을 뜻하며, 비블로스 성취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단위이다. 변질된 설교 중심의 모임에서 벗어나 올바른 비블로스를 소리 내어 읽는 낭독의 전통을 회복할 때 비로소 참된 이스라엘과 왕가의 회복이 완성된다.

맛 4:23
예수스께서 온 갈릴레에를 돌아다니시면서, 그들의 시나고그들에서 가르치셨고, 왕국의 희소식을 선포하셨으며, 백성 중에서 각종 질환과 각종 질병을 치유해주셨습니다.
And Jesus went about all Galilee, teaching in their synagogues, and preach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healing all manner of sickness and all manner of disease among the people.

낱말 설명

이스라엘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이 선민이 맞다면 세상의 빛이 되고 인류의 모범이 되어야 마땅할 텐데, 지금처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은 이스라엘답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시나고그만 제대로 알아도 달라질 것입니다. 이스라엘 회복의 결정적 열쇠가 시나고그입니다. 시나고그 문제가 풀리면 성전 문제가 풀리고, 성전 문제가 풀리면 비블로스 문제가 풀립니다. 역으로도 성립됩니다. 비블로스 문제가 풀리면 성전 문제가 풀리고, 시나고그 문제도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시나고그(synagogue)는 그리스어 시나고게의 영어 음역입니다. 어원은 [sun, together + ago, to bring]으로 구성되어 (사람들을) 함께 데려오는 것(a bringing together) 즉 모임(meeting)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인들은 히브리어 낱말인 베트 크네세트(모임의 집)를 사용하기도 하고, 아쉬케나지 유다인들은 이디시어인 슐(schule, 학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개혁파 유다인들은 사원 개념으로 템플(temple, 성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스페인계 유다인들은 시나고가(sinagoga)를 사용하며,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에서도 그리스어 음역인 시나고그를 사용합니다.

B.C. 957년 솔로몬 성전이 완공된 이래로 이스라엘의 모든 종교 활동과 삶의 중심은 오직 성전(temple)이었습니다. 하지만 B.C. 587년 바빌론 유수 이후부터 성전 사용이 어려워진 이스라엘인들 사이에 성전을 대신하는 시나고그라는 모임들이 생겨났고, A.D. 70년 로마제국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뒤부터 모든 이스라엘인들 사이에 시나고그들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전 세계 모든 이스라엘인들은 시나고그들에서 자신들의 종교 활동을 지속하고 있고, 이러한 전통은 솔로몬 성전이 재건될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성전과 시나고그는 본질상 같은 맥락, 같은 개념입니다. 국가적 규모의 성전이 소규모 혹은 가족 규모의 시나고그로 축소된 것이 후퇴인 것은 아니며, 오히려 본래의 가족 개념으로 진일보한 것이라 보아야 합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인들이 장소 개념에 갇혀 있고, 가족 개념을 놓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엘로힘의 집으로서의 성전은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엘로힘의 가족을 가리키며, 시나고그 역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임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이스라엘 가족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임 장소인 물리적 장소 개념에서 출발하는 것은 맞지만, 본질과 목적은 가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성전과 시나고그의 목적은 비블로스 성취에 있습니다.

비블로스 성취의 첫걸음은 비블로스 낭독입니다. 물론 올바른 비블로스라는 전제하에서입니다. 이스라엘 문제의 본질은 올바른 비블로스를 놓치고 있고, 엘로힘의 뜻이 가족이라는 진리를 놓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올바른 비블로스를 붙잡고, 가족의 진리로 돌아오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인 것입니다.

예수스께서 유다인들의 시나고그들에서 가르치시며 왕국의 희소식을 선포하신 것은, 시나고그가 비블로스 성취의 출발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다인들에게는 시나고그의 비블로스 낭독이 성취의 출발점이고, 이방인들에게는 왕가의 비블로스 낭독이 성취의 출발점입니다. 십자가 진리 안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었듯이, 시나고그와 왕가는 하나이며, 결국 엘로힘의 이스라엘로 성취될 것입니다(갈 6:16).

시나고그나 왕가나 장소 개념에 머물러 있고 가족 개념을 놓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전이 엘로힘의 집이고, 집의 실체가 가족이듯이, 시나고그도 그러하고, 왕가(에클레시아)도 그러합니다.

모든 이스라엘인들은 알아야 합니다. 유일하신 엘의 뜻은 가족의 진리인 엘로힘입니다. 엘에 머물러 있지 말고 엘로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엘로힘의 집인 성전이 가족의 진리이며, 시나고그 역시 가족의 진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전이 시나고그를 거쳐 왕가로 발전한 사실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십자가 진리 안에서 유다인과 이방인은 하나이며, 시나고그와 왕가는 하나입니다.

유다인들의 시나고그와 인류 전체의 왕가는 비블로스 성취의 중심입니다. 비블로스 성취의 첫걸음은 올바른 비블로스를 붙잡고 비블로스 낭독의 전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

기독교가 이슬람교에게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놓치고 있는 것을 이슬람교가 실천하고 있는 것인데, 이슬람교가 기독교보다 더 확산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낭독(reading)입니다. 기독교는 설교 중심으로 온갖 전도, 선교 활동과, 성경 해석, 가르침 등으로 늘 분주하지만, 이슬람교는 코란(쿠란, 꾸란) 중심으로 조용히 실천하는 삶을 살 따름입니다.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은 아랍어로서 ‘읽어야 하는 것’ 즉 ‘낭독’을 의미합니다.

인간을 향한 엘로힘의 뜻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비블로스를 소리 내어 읽는 낭독만 실천하여도 비블로스 성취의 첫 단추는 채워진 것입니다. 낭독을 중심으로 가르침, 해석, 설교 등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문제는 낭독의 전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낭독 중심의 모임이 설교 중심의 모임으로 바뀌면서 변질과 분열이 야기된 것입니다.

잃어버린 비블로스 낭독을 속히 회복해야 합니다. 우선 올바른 비블로스 회복이 급선무인데, 지배권주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살펴지키는 인간의 전체의무를 반드시 이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바른 안티오키아 비블로스가 회복되면, 그다음에 할 일이 바로 비블로스 낭독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비블로스 낭독의 전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도 시나고그에서 올바른 비블로스를 낭독하는 것이고, 왕가의 회복도 왕가의 가족 모임에서 올바른 비블로스를 낭독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개혁을 부르짖기 전에, 세계 선교를 외치기 전에, 비블로스 낭독부터 회복하십시오. 밤이 깊어 가고 동이 틀 무렵인 지금, 올바른 비블로스 낭독이야말로 시대적 요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