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접 기도'가 아니라 '왕가 저녁식사'의 회복이다

지배권주의 저녁식사의 회복 | 계시(Rev.) 3:20

왕가 저녁식사의 회복은 개인의 영접 기도가 아니라, 지배권주 없는 상태에 놓인 왕가를 향한 엄중한 경고이다. 기독교 실용주의가 만든 자판기식 구원론에서 벗어나, 머리이신 지배권주와 몸인 왕가가 하나 되는 만찬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문맥을 무시한 자의적 해석을 바로잡고 지배권주와의 실제적인 사귐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제임스왕역본)
Behold,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 man hear my voice, and open the door, I will come in to him, and will sup with him, and he with me.

(안티오키아 비블로스)
주목하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린다: 어떤 사람이든지 내 음성을 듣고서,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갈 것이며, 그와 함께 저녁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개역개정)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비교해설

그냥 볼지어다(보아라) 하는 것과 주목하라 하는 것은 중요도에서 차이가 납니다. 이 구절은 개인의 영접 기도 내용이 아니라, 왕가(교회)를 향한 엄중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짤막한 영접 기도 한 번이면 구원받고 창조주의 자녀가 된다는 소위 자판기식 구원론은 미국 실용주의 기독교의 산물입니다. 그 결과 구원의 확신으로 무장한 쭉정이들을 대량생산해 냈습니다.

본문은 구원받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전혀 아닙니다. 이미 구원받은 크리스천 가족들인 왕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라오디키아인들의 왕가에 대한 경고의 말씀으로서, 그들이 물질적 풍요에 눈이 멀어 세상과 비블로스의 중간 지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회색 크리스천들이 너무도 역겨워 지배권주께서는 도저히 그들과 함께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지배권주의 가족인 왕가가 정작 지배권주 없는 왕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실로 위기 상황이자 비상사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는 약속도 왕가의 저녁식사(만찬)에 대한 약속입니다. 지배권주의 저녁식사(만찬)는 한 몸 곧 왕가의 증거입니다. 머리 없는 몸은 죽은 몸입니다. 지배권주의 저녁식사의 회복은 머리이신 지배권주와 몸인 왕가의 회복입니다.

왕가 저녁식사(만찬)의 회복에 대한 말씀을 구원의 혜택으로 왜곡한 것은, 더불어 먹는 것을 단지 구원받은 자의 풍성한 삶 정도로 해석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후 문맥과 내용의 흐름을 무시한 채 그저 구원 방법론에 꿰맞춘 기독교 실용주의자들의 자의적 해석이 야기한 어처구니없는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