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온 로마서 들어가는 말

당신에게 온 로마서 들어가는 말
Photo by David Köhler / Unsplash

새로운 시각을 가진 어떤 사람이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각이다. 기존 시각들로는 볼 수 없던 것을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존 시각들에 길들여져 왔다. 세상에서 객관적 신뢰를 독차지하는 시각들이 있다. 위대한 철학자들, 뛰어난 인문학자들, 천재 과학자들, 이들의 다양한 시각들이 이미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지만, 문제는 태양 아래 새것이 없다는 것이다. 인본주의 시각은 더 이상 새것이 아니고 진리가 아니라서 답이 없다. 우리는 이미 지쳐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 새로운 시각이 있다면,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찾던 인생의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생은 생존 그 이상이다. 인류 역사는 생존 그 이상을 추구해온 역사이고, 그 역사는 결코 짧지 않았다. 지나온 시간들 동안에 할 만큼 했고, 겪을 만큼 겪었다. 이제 총정리하고 결론을 내릴 만큼 모든 것들이 무르익었다. 인류 역사도, 내 개인의 삶도 끝이 보인다. 그동안 우리는, 인간 중심으로,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인간의 업적을 쌓아왔다. 그것이 찬란한 금자탑이라 할지라도, 인본주의 승리인지, 아니면 인본주의 종말일지는, 시간이 좀 더 지나봐야 알 것 같다.

인류 역사를 통해 사람들은 먹고 사느라 농사도 짓고, 유목 생활도 하다가, 문명 발달에 따라서 산업혁명과 첨단 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본주의 바벨탑을 쌓아 올렸다. 컴퓨터 발명과 함께 인터넷 시대가 왔고, 급기야 가상현실, 메타버스, 양자 컴퓨터 시대까지 이르렀다. 과연 인류의 미래,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젊은 시절 나는 성경 중에서도 특히 로마서를 좋아했고, 로마서 성경공부를 자주 했었다. 로마서라는 명칭은 나에게 매우 친숙했다. 훗날 성경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성경 번역의 길로 들어섰고, 사십여 년의 긴 세월 동안 정확한 성경 번역 작업에 몰두하였다.

진리를 찾아 방황하다가 성경이 진리라고 확신하게 되었고, 내 인생의 선택이 결국 성경 번역이 된 것이었다. 나에게 진리란 거짓 없고 정확하며 영원한 어떤 것이다. 그래야 모든 것들에 대한 답을 줄 수 있고, 인생의 정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철학과 과학에서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진리를 발견할 수 없었다. 심지어 세계의 종교들 가운데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진리에 대한 주장들과 말들은 무성하였지만, 이것이 진리라고 직접 보여주는 것은 없었다.

세상에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단 하나 성경이 있었다. 직접적으로 “내가 곧 그 진리다”라고 선언한 분을 창조주라 했다. 그분의 말씀이 진리이며, 진리의 책이 성경이란다. 양자택일만 남았다. 성경이 진리이든지, 아니면 종교 사기극이든지. 거짓 없고 정확하며 영원하다면 진리가 맞지만, 오류가 있다면 진리라 할 수 없고, 거기에 영원한 운명을 맡긴 사람들을 오류로 인도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새로운 시각을 가진 그 사람을 소환하기로 했다. 그의 시각은 진리의 시각이었다. 나에게 그토록 친숙하였던 성경 로마서를 쓴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인데, 놀랍게도 책 제목도, 저자의 이름도 정확하지 않았다.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사도 파울로스의 서신(THE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ROMANS)

나에게 그토록 친숙하였던 성경 ‘로마서’가 제목부터 오류였다니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파울로스가 서신을 쓴 대상은 로마(Roma, Rome)가 아니라 로마인들(Romans)이었다. 파울로스의 관심사는 로마라는 도시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었고, 로마인들의 창을 통해 내다 본 인류의 지성인들이었다. 따라서 로마서가 아닌 로마인서이며, 성경 ‘로마서’ 대신 비블로스 ‘로마인들’이라 불러야 맞다. 그것이 정확하니까.

한글로 성경 혹은 성서라는 명칭 역시 정확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역(正譯)이 아닌 의역(意譯)이었다. 책(冊)을 뜻하는 경(經)자 혹은 서(書) 앞에 거룩을 뜻하는 성(聖)자를 덧붙여 일반 책과 구분한 것은 잘한 것이지만, 고유성을 살리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영어의 바이블(Bible)도 정확한 명칭은 아니다. 라틴어 비블리아에서 왔고 이 라틴어는 그리스어 비블리아에서 왔는데, 둘 다 복수명사다. 문제는 이 복수명사의 단수가 무엇인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데 있다. 일반 책을 가리킬 때는 중성명사 비블리온이고, 일반 책과 구분되는 진리의 책의 경우는 여성명사인 비블로스다.

“진리의 책은, 주인공이신 예수스 크리스토스의 생명세대(게네시스)의 책이다!” 이 사실을 공식 선언한, 맛싸이오스에 따른 희소식( 마태복음, Matt.) 제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비블로스 게네세오스 이에수 크리스투. 여기서 첫 낱말인 비블로스가 진리의 책의 공식 이름이다. 게네시스로 시작하는 비블로스가 바로 진리의 책이라는 뜻이다. 비블로스의 시작인 게네시스(창세기)도 음역하여 ‘게네시스’라 해야 한다. 영어는 제네시스(Genesis)라 음역했는데, 한글은 창세기라고 번역하여 첫 단추부터 오류를 범했다.

일반 책이 아니고 유일무이한 진리의 책이므로 고유명사 비블로스가 맞다.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고 인류 전체를 위한 진리의 책이므로, 첫 세계어이자 인류 언어인 코이네 그리스어로 진리의 책 이름을 명명하는 것이 합당하다. 고유명사인 비블로스이므로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에도 그대로 비블로스라고 음역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한글의 경우는 음역을 하지 않고 성경 혹은 성서로 번역했고, 영어는 음역하되 잘못된 음역을 하여 바이블(Bible)이라 했다. 더더구나 책 이름은 바이블(Bible)인데 정작 본문은 책(book)이라고 번역하는 모순을 범했다. 맛싸이오스 1장 1절의 경우도 “The book of the generation of Jesus Christ”로 번역했다. 진리의 책에 대한 공식 선언을 한낱 이스라엘 왕의 족보 책으로 착각했다면 이는 결코 작은 실수가 아니다.

진리의 책 비블로스는 그리스어 여성명사이고, 일반 책은 중성명사이다. 일반 책의 단수는 비블리온이고 복수는 비블리아이며, 영어 바이블은 비블리아를 음역했다. 유일무이한 진리의 책이므로 일반 책인 중성명사와 구분하여 여성명사이자 고유명사인 비블로스라 해야 정확하다. 여성명사인 이유에 대해서도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흔히들 비블로스가 파피루스에서 왔고, 파피루스 수출도시가 비블로스이며, 도시가 여성명사이듯 비블로스도 여성명사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보다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비블로스는 창조주의 숨이 주입된 책이다(2Tim. 3:16). 숨(breath)이라는 바람(공기) 속에는 영과 혼이 들어있다. 영만 아니고 혼이 들어있으며, 혼은 그리스어로 프쉬케이고 여성명사다. 창조주의 프쉬케와 사람의 프쉬케가 함께 숨 쉬는 진리의 책이 비블로스인 것이다. ‘오스’로 끝나는 남성명사 형태지만 예외적으로 여성명사인 경우가 바로 비블로스다. 남성과 여성이 하나되어 함께 숨 쉰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남편 된 창조주와 아내인 인간의 하나됨, 신랑 되신 크리스토스와 신부인 왕가의 하나됨이라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다.

진리의 책 이름이 비블로스라는 고유명사가 맞다면, 잘못 표기된 이름들을 바로잡아 정확히 표기하는 것이 옳다. 한글의 성경, 성서는 비블로스로 바로잡고, 영어의 바이블(Bible)도 비블로스(Biblos)로 바로잡아야 한다. 따라서 성경 ‘로마서’가 아니라 비블로스 ‘로마인들’이라 해야 옳다.

저자의 이름도 바울이 아니라 파울로스다. 바울로, 바오로, 바우로 등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정확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름이 정확하지 않으면 자칫 이름 속에 담긴 메시지를 놓칠 수 있다. 원래는 히브리어 이름인 샤울(사울)이었는데, 회심 후 파울로스로 개명하였다. ‘큰 자’ 사울이 ‘작은 자’ 파울로스가 되었다는 변화된 삶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굳이 그리스어 이름을 선택한 것은, 히브리어는 이스라엘로 국한되나 그리스어는 최초의 세계어로서 인류 전체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가 이방인의 사도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이 로마의 시민권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라틴어로 파울루스(Paulus)라 하지 않고 그리스어로 파울로스(Paulos)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지 책 제목과 저자의 이름을 바로잡았을 뿐인데 이토록 의미가 달라지고 메시지가 달라진다. 이것이 진리의 책이 아니라면 크게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진리의 책인데다가, 인류와 나의 영원한 운명이 달려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물론 우리 모두는 틀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완전한 인간들은 아니다. 하지만 삶의 무게만큼 진리를 찾는 노력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자세히 살펴서 정확히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며, 인간의 전체 의무(whole duty)를 저버린 처사다(Ecc. 12:13). 진리가 정확해야 거기서 인생의 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막연히 성경 ‘로마서’를 읽고 열심히 공부하던 나였지만, 이제 비블로스 ‘로마인들’로 다시 읽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래야 바울이 아닌 파울로스의 시각으로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성경 ‘로마서’를 비블로스 ‘로마인들’로 다시 읽기 위하여, 몇 가지 사전 지식들을 정리한 다음 본문으로 들어갈 것이다. 서문에서는 파울로스에 대하여 더 알아본 다음, 로마인과 나의 관계에 대하여 알아보고, 낱말과 숨주입에 대해 이해한 후, 무엇보다도 창조주의 이름에 대한 바른 지식을 확인하고, 권력이라는 낱말에 대하여, 그리고 믿음과 믿쁨에 대하여 정리함으로써, 본문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