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ach 선포하다

설교와 선포

preach 선포하다
Photo by Sixteen Miles Out / Unsplash

선포는 성직계급의 전유물인 강단설교가 아니라, 정확한 비블로스 지식을 널리 알리는 행위이다. 지위와 상관없이 누구나 선포자가 될 수 있으며, 순수한 비블로스 낭독을 들을 때 비로소 참된 믿쁨이 생긴다.

롬 10:14-17
14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이 믿지 않은 그분을 부르겠습니까? 어떻게 그들이 듣지 못한 그분을 믿겠습니까? 어떻게 그들이 선포자 없이 듣겠습니까?
15 어떻게 그들이 보내심을 받지 않았는데, 선포하겠습니까? 기록되기를, “얼마나 아름다운가, 평화의 희소식을 선포하며, 착한 일들에 대한 반가운 소식들을 가져오는 그들의 발들이여!” 한 것과 같습니다.
16 그러나 그들이 모두 다 희소식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에사이아스가 말합니다, “지배권주시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습니까?”
17 따라서 믿쁨은 들음에 의해 오고, 들음은 엘로힘의 말씀에 의해 옵니다.
14 How then shall they call on him in whom they have not believed? and how shall they believe in him of whom they have not heard? and how shall they hear without a preacher?
15 And how shall they preach, except they be sent? as it is written, How beautiful are the feet of them that preach the gospel of peace, and bring glad tidings of good things!
16 But they have not all obeyed the gospel. For Esaias saith, Lord, who hath believed our report?
17 So then faith cometh by hearing, and hearing by the word of God.

낱말 설명

믿쁨은 들음에서, 들음은 엘로힘의 말씀에 의해 오는데, 선포자 없이는 들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선포란 무엇이며, 누가 선포자인가의 문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평화의 희소식을 선포하며, 착한 일들에 대한 반가운 소식들을 가져오는 그들의 발들이여! 그만큼 선포는 아름다운 것이며, 평화를 성취하는 착한 일입니다.

선포(preach)란 중대한 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정식으로 널리 알리는 행위입니다. 정확한 정보를 아는 사람이 선포자(preacher)의 자격입니다. 지위가 높거나 특별한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정확한 정보를 알기만 하면 선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가령 사도들과 대언자들은 비블로스 완성을 위해 특별히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인데, 비블로스가 완성된 이후로는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임무는 비블로스에 흡수되었기에, 선포자의 역할로 전환되는데, 왜냐하면 비블로스의 정확한 지식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사도들과 대언자들이기에 선포자가 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일반 크리스토스인들이라 할지라도 정확한 비블로스 지식만 갖추면 얼마든지 선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왕국의 희소식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희소식 선포자가 될 수 있습니다. 평화의 희소식이란 더 이상 적대시할 필요가 없고 전쟁할 필요가 없는 희소식으로서, 창조주와 인간이 화해하였다는 희소식이고, 이스라엘과 이방인 사이의 중간 벽이 무너져 한 가족이 되었다는 희소식이며, 인류의 모든 민족들이 한마음, 한 가족이 되었다는 희소식입니다. 비블로스 희소식을 정확히 이해한 사람이라면 이 놀라운 소식에 대하여 결코 침묵할 수 없고, 선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비블로스의 선포 개념을 잘못 이해하여 왜곡한 경우가 성직계급의 강단설교입니다. 가령 개신교의 경우 목사들을 사도들의 계승자로 보고, 전도사들을 전도자들(Evangelists)의 계승자로 보아, 이들의 소위 강단설교를 선포개념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프리쳐(preacher)를 목사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나 전도사라도 정확한 비블로스 지식이 없으면 선포자의 자격이 없습니다. 반면에 소위 평신도라 할지라도 정확한 비블로스 지식이 있으면 선포자의 자격이 있습니다.

문제는 세상의 불신입니다. 창조주에 대한 불신, 비블로스 말씀에 대한 불신이 워낙 극심하므로, 선포자들이 아무리 선포하여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선포의 자격이 없는 성직계급들(목사, 전도사, 신부 등)의 설교는 잘 들어줍니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

성직계급들의 설교들을 들으면 믿음이 생기겠지만, 믿쁨은 생기지 않습니다. 정확한 비블로스 지식을 가진 선포자들이 선포하는 말씀들을 들어야 비로소 믿쁨이 생깁니다. 성직계급이 아닐지라도 정확한 비블로스 지식을 가졌다면 얼마든지 선포자의 자격이 있으므로, 반드시 선포해야 합니다. 선포해야 들을 수 있고, 들어야 믿쁨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가장 효과적이고 순수한 선포는 비블로스 낭독입니다. 비블로스 말씀기록 그대로 소리내어 낭독하는 것이야말로 순수한 말씀 그 자체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이며, 그렇게 들을 때에 순수한 믿쁨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존에 믿쁨이 있는 사람들은 그 믿쁨이 더욱 더 자라며 성숙되어 풍성해질 것입니다.

성직계급들의 설교들을 순수한 비블로스 낭독들과 선포들로 대체해 나가는 일이, 작은 불꽃들로 시작하여 들불처럼 번져나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