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젖'이 아니라 '순수한 말씀의 젖'이다
순수한 말씀의 젖 | 페트로스첫째(1Pet.) 2:2
순수한 말씀의 젖은 모호한 종교적 개념인 '신령한 젖'이 아니라, 새로 태어난 새생명을 성장시키는 비블로스의 진리이다. 개역개정의 오역과 달리 이는 이미 구원받은 자가 말씀에 반응하며 성장하는 본능적 과정이다. 불순한 번역을 분별하고 순수한 말씀을 사모할 때 참된 성장이 이루어진다.
(제임스왕역본)
As newborn babes, desire the sincere milk of the word, that ye may grow thereby:
(안티오키아 비블로스)
새로 태어난 갓난아기들처럼,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십시오, 이는 그것에 의하여 여러분이 성장하게 하려는 것이니:
(개역개정)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비교해설
그리스어 로기콘 아돌론 갈라를 제임스왕역본(KJV)이 신시어 밀크 오브 더 워드(the sincere milk of the word)로 번역한 것은 정확합니다. 한글로는 ‘순수한 말씀의 젖’이라 번역해야 정확합니다.
이것을 개역개정은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라 번역하였는데, 심각한 오역입니다. 비블로스 말씀의 젖이라는 명확한 대상을 신령한 젖이라는 모호한 종교적 개념으로 덧칠하였는데, 신령이란 개념은 신기하고 영묘한 토착 민속신앙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새로 태어났다는 것은 아담의 옛생명이 아닌 크리스토스의 새생명을 가리키며, 갓난아기는 새생명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즉 구원받아 새생명이 시작되었다는 명확한 증거가 비블로스 말씀에 대한 순수한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 구원받았고, 새생명이 시작되었다면, 순수한 말씀인 비블로스를 알아볼 것이며,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개역개정과 같은 불순한 성경들에 대해서는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반면에 순수한 말씀인 안티오키아 비블로스에 대해서는 사모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새생명의 본능으로서 지극히 당연합니다.
말씀의 젖과 신령한 젖의 차이는 비블로스 진리와 토착 민속종교의 차이라 할만큼 하늘과 땅의 차이인 것입니다.
비블로스 말씀의 젖은 새롭게 태어난 갓난아기의 생명을 성장하게 합니다. 그런데 개역개정은 이것을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한다고 오역했습니다. 이미 구원 받은 새생명인데도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구원 받은 새생명의 증거는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랑하므로 성장하는 것은 뒤따르는 당연한 결과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성경은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한다는 모호한 종교 개념을 통해서 곁길로 유도합니다. 그리하여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이끌어가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