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y 은총

동정심이 아닌 총애관계

mercy 은총
Photo by Chandan Chaurasia / Unsplash

머시(mercy)는 동정심이나 자비가 아니라 총애 관계에 기초한 은총이다. 비블로스는 인간을 동정받는 존재가 아닌 엘로힘의 아들로 선언하며, 은총은 청구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임을 밝힌다.

오 주께 감사들을 드려라; 그분은 착하시며: 그분의 은총이 영원하도록 견딘다.(시 136:1)
O give thanks unto the LORD; for he is good: for his mercy endureth for ever.

낱말 설명

영어 머시(mercy)는 독특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총애 받는 친자식이 비참한 상태에 놓이자 애틋한 마음으로 합당한 거래를 한다는 개념의 낱말입니다. 즉 총애관계와 부자관계에 기초하여 애틋한 마음으로 정상 거래를 하는 경우이므로, 은총(恩寵)이라 번역하는 것이 합당하고 정확합니다.

여기서 총애관계와 부자관계를 빼버리고 비참한 상태에 대한 동정심만을 강조한 것이 자비(慈悲), 인자(仁慈), 긍휼(矜恤)이란 번역입니다. 자비란 번역은 불교의 핵심교리인 부처의 대자대비(大慈大悲) 사상에서 차용해 왔고, 인자란 번역도 공자의 인의(仁義) 사상에서 차용해 온 소위 토착화 신학의 결과물로서, 창조주를 제외시킨 채 인간(성자, 군자)과 인간(중생, 백성)의 관계로 국한시킨 인본주의 개념의 번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용례에서 긍휼로 번역한 것 역시 맞지 않습니다. 긍휼의 긍(矜)은 창자루를 뜻하고, 휼(恤)은 피흘리는 마음을 뜻하여, 창자루를 쥔 자가 피흘려 죽을 처지에 있는 불쌍한 자에게 관용을 베푼다는 의미가 긍휼입니다. 14,15세기 프랑스와 영국에 널리 유행한 ‘미세리코르데’는 전투 중에 중상자의 숨통을 단숨을 끊어주는 긍휼의 단검(mercy dagger)을 의미하였습니다. 총애받는 친자식을 목숨을 구걸하는 비겁한 패자로 취급하는 것이 긍휼 개념인 것입니다.

어원적으로는 영어 머시(mercy)가 히브리어 케세드(checed), 그리스어 엘레오스(eleos)를 번역한 라틴어 메르케스(merces)의 음역입니다. 프랑스어 메르시(mersi)도 메르케스의 음역입니다. 보상이란 의미가 감사란 의미로 파생되기도 하였습니다.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동정심(compassion)과 보상(reward)의 개념에 그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비블로스는 이 낱말을 창조주와 인간의 관계에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즉 비블로스 용례는 창조주와 인간의 총애관계, 친자식관계에 기초하여 이 낱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인본주의 개념의 번역은 적어도 비블로스 용례에서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인간을 향한 창조주의 시각은 자비의 시각이 아니고, 인자의 시각이 아니며, 긍휼의 시각도 아닙니다. 비록 타락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종이나 노예, 구걸하는 거지가 아니라 타락한 자식인 탕자(prodigal son)일 뿐입니다. 따라서 자비를 베푸소서,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긍휼을 베푸소서 하는 것은 다 오류이며, 오직 은총을 베풀어 주십시오 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머시(mercy) 즉 은총은 일방적 은혜 개념과는 달리, 쌍방적 거래관계에 기초한 개념입니다. 머시의 어원인 라틴어 메르세스(merces)는 정당한 보상(reward)을 의미하고, 또 다른 어원인 메륵스(merx, 소유격 mercis)는 상품을 뜻하는데, 여기서 시장이란 뜻의 마켓(market)이 유래하였습니다. 따라서 머시 즉 은총은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권리에 기초하여 창조주와 거래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종이나 노예처럼 비굴해지지 말고, 거지처럼 구걸하지도 말며, 총애받는 자식으로서 당당한 은총을 청구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은총이란 낱말을 자비와 긍휼로 대체시킨 것은 크나큰 오류입니다. 특히 어거스틴과 칼뱅의 전적타락설이 은총을 지워버리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한글 성경 번역자들이 칼빈주의에 중독된 나머지 이 낱말을 자비로 오역하였고, 은총이 많으신 창조주를 자비로우신 창조주로 왜곡하였습니다.

원래 인간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대단히 중요한 낱말이 바로 머시(mercy) 즉 은총입니다. 창조주와 인간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총애관계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의 은총은 영원하도록 견딥니다!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

그동안 잘못 번역된 성경 때문에 창조주를 오해하였고, 우리 자신을 오해하였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이라는 우리의 고백은 창조주를 슬프시게 하는 고백이었습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하는 우리의 외침은 응답 받을 수 없는 헛된 외침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합니다. 비블로스 진리에 따라서, 정확한 의미의 은총을 요구해야 마땅합니다. 은총을 베풀어 주십시오, 은총을 허락해 주십시오, 할 때에 구걸하듯이 하지 말고, 당당히 합당한 권리로서 청구하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애걸이 아니라 정당한 거래입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엘로힘의 아들(son)이며(뤀 3:38), 그분의 친 자손(offspring)이기 때문입니다(활 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