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ation 숨주입

성경영감설과 숨주입

inspiration 숨주입
Photo by Bruno Martins / Unsplash

비블로스는 영감된 책이 아니라 전능자의 숨주입(Inspiration)으로 주어진 생명의 기록이다. 숨(breath)은 영뿐만 아니라 을 포괄하며, 이 숨주입을 통해 얻는 이해력만이 비블로스의 본질을 꿰뚫는 열쇠가 된다. 영감이라는 오역에서 벗어나 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착한 엘성으로 진리를 성취하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 안에는 영이 있으며: 전능자의 숨주입이 사람들에게 이해력을 주십니다. (욥 32:8)
But there is a spirit in man: and the inspiration of the Almighty giveth them understanding.
비블로스기록 전체는 엘로힘의 숨주입에 의하여 주어졌고, 교리를 위하여, 책망을 위하여, 교정을 위하여, 의 안의 교육을 위하여, 유익하니: (팀둘 3:16)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낱말 설명

성경영감설이란 말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오류입니다. 성경이 아니라 비블로스이고, 영감이 아니라 숨주입이며, 설(說)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眞理)의 문제입니다.

기독교가 성경영감설의 기초 위에 서 있다는 것은 오류의 기초 위에 서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것은 적은 일이 아니며, 근본이 흔들리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성경영감설을 바로잡지 않으면 기독교의 미래는 없습니다.

창조주께서 직접 숨을 주입하신 피조물은 인간과 비블로스 둘뿐입니다. 그만큼 인간과 비블로스는 창조주의 마음 중심의 두 축으로서, 이 두 축이 하나가 되면 창조주의 뜻이 온전히 성취됩니다.

숨주입으로 산 혼이 된 인간에게(겐 2:7), 숨주입된 비블로스가 주어지는 것(팀둘 3:16), 그것이 창조주의 영원한 계획입니다. 첫번째 숨주입은 첫창조를 위한 것이고, 두번째 숨주입은 새창조를 위한 것입니다.

창조주의 숨주입은 혼(soul)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첫번째 숨주입의 열매인 인간의 정체성이 혼이듯이, 두번째 숨주입의 열매인 비블로스의 정체성도 혼입니다. 물론 숨에는 영도 있고 혼도 있어서, 영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혼의 기능이 더욱 중요하며 결정적입니다. 따라서 숨주입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영의 문제 못지않게 혼의 문제를 잘 알아야만 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짐승보다 뛰어나고 심지어 천사들보다 뛰어난 것은 혼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혼의 정체성을 갖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입니다. 짐승이나 천사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영은 있으되 혼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혼은 창조의 중심입니다.

비블로스의 정체성도 혼입니다. 인간의 혼에 맡겨졌고,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는데, 언어 역시 혼에 속합니다. 영의 말씀을 담고 있으나, 담는 그릇인 언어는 혼이고, 직접 기록하고 번역하는 것도 혼의 몫입니다. 혼의 그리스어 프쉬케가 여성명사이듯이 비블로스도 여성명사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남성명사인 창조주의 짝(아내)이 여성명사인 인간의 혼이며, 여성명사인 비블로스라는 의미입니다. 중성명사로 번역한 바이블이나 성경 혹은 성서는 모두 오류입니다.

숨주입된 인간에게 숨주입된 비블로스가 주어지는 대신에, 영감된 성경(성서) 혹은 바이블이 주어진 결과, 창조주의 뜻과는 거리가 먼 오늘날의 기독교가 눈앞의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숨주입의 정확한 이해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습니다. 인간창조 시 불어넣은 생명의 숨(겐 2:7)은 히브리어 네샤마인데, 인간에게 이해력을 주시는 전능자의 숨주입도(요브 32:8) 히브리어 네샤마이며, 이것이 영어 인스퍼레이션(inspiration)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비블로스가 창조주의 숨주입으로 주어졌는데(팀둘 3:16), 여기서 숨주입에 해당되는 그리스어 프네오가 네샤마에 해당되며 영어 인스퍼레이션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인스퍼레이션의 어원은 [인(in) + 스피라레(spirare)]로 구성되어 “숨(breath)을 주입한다(into)”를 뜻합니다. 여기서 스피라레(spirare)인 숨(breath)을 스피릿(spirit)인 영(靈)으로 착각한 것이 영감(靈感)이란 한글번역입니다. 심지어 영어권 사람들조차 숨을 영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영감이란 오역은 혼을 놓친 오역으로서, 알멩이가 빠진 쭉정이 번역입니다. 창조주의 영원한 계획은 숨주입에 달려있고, 숨주입은 혼에 달려 있습니다. 혼이 빠진 영은 오류의 영이며, 혼이 복원된 숨이라야 영도 바르게 복원되어 진리의 영이 될 수 있습니다.

숨주입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혼의 기능과 역할에 대하여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숨주입된 인간의 혼이 숨주입된 비블로스와 만나서 새로난(born again) 크리스토스 사람으로 확증되면 비로소 밥티스마 성도(baptist saint)라 부를 수 있습니다.

밥티스마 성도는 비블로스와 함께 숨쉬며 숨주입이 주는 새로운 이해력을 가지고 비블로스를 바르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맛 28:19,20의 지상명령의 골자가 밥티스마를 주고 비블로스를 살펴지키게 하라인 이유를 잘 설명해 줍니다.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

이제부터는 영보다는 혼에 대하여 더 잘 알아야 합니다. 혼을 제대로 알아야 영도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혼을 무시하거나 약화시키면 오류의 영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그렇다고 영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니며, 우선순위가 혼 다음에 영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만큼 건전한 혼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근본문제는 성경영감설의 기초 위에 서 있다는 데 있습니다. 사본학의 근본문제는 무자격자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며 잘못된 바이블들, 성경들을 무수히 만들어내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숨주입이 주는 이해력 없이 첫 창조에 속한 지식만으로 전문가 행세를 하는 성서학자들을 극도로 경계해야 합니다. 오직 밥티스마 성도들만이 숨주입이 주는 바른 이해력으로 비블로스를 정확히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착한 엘성(conscience, 양심)이 있는지 점검하여 입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혼에는 창조주를 닮은 본성인 엘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그냥 양심(良心)이라고 칭하지만, 창조주의 형상에 해당하므로 엘성이라 칭하는 것이 맞고, 엘성은 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혼에 속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엘성이 내재되어 있어서 창조주의 마음을 닮은 본성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비블로스 진리를 만나 새로나게(born again) 되면 엘성이 착한 엘성(good conscience)으로 변화합니다.

착한 엘성이란 비블로스 말씀을 사랑하여 비블로스 기록대로 살고자 하는 새로운 본능을 말합니다. 비블로스에 대한 영원한 신뢰와 배반치 않는 본성으로서, 이것은 믿쁨(faith)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 믿쁨과 착한 엘성이 있는지 점검하여 여러분 자신을 입증하십시오(코둘 13:5). 이것이 확실히 입증되면 그 증거로 밥티스마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밥티스마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구원받았다는 참 의미와 알곡 성도라는 확실한 증거가 바로 착한 엘성과 믿쁨의 유무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비로소 비블로스가 바르게 이해될 것입니다. 전능자의 숨주입이 주는 이해력(understanding)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