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spel 희소식

유앙겔리온, 왕국의 희소식

gospel 희소식
Photo by Tim Wildsmith / Unsplash

희소식은 기복신앙을 부추기는 ‘복음’이 아니라, 인본주의 통치를 끝내고 하늘의 질서를 세우는 왕국의 희소식이다. 종교적 틀에 갇힌 일방적 선포에서 벗어나 인간의 보편적 본능과 소통하는 참된 희소식을 회복해야 한다. 왕가는 관념을 넘어 이 땅에 새로운 정치 체제를 성취하는 주역이 되어야 마땅하다.

예수스께서 온 갈릴레에를 돌아다니시면서, 그들의 시나고그들에서 가르치셨고, 왕국의 희소식을 선포하셨으며, 백성 중에서 각종 질환과 각종 질병을 치유해주셨습니다.(맛 4:23).
And Jesus went about all Galilee, teaching in their synagogues, and preach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healing all manner of sickness and all manner of disease among the people.

낱말 설명

지금까지 알던 희소식이 아닙니다. 비블로스의 희소식은 완전히 새로운 것입니다. 바른 개념과 비블로스 용례,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개념부터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지금껏 알던 희소식은 땅에 속한 희소식이지만, 비블로스 희소식은 하늘에 속한 희소식입니다. 그리스어 유앙겔리온은 앙겔로스(천사)가 전하는 희소식으로서 하늘로부터의 희소식 즉 하늘에 속한 희소식을 뜻합니다. 사람은 땅에서 나서 땅에 속한 물질생활을 영위하다가 땅으로 돌아갑니다. 인류는 땅에 친숙하며 땅의 개념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반면, 하늘은 낯설고 생소하며 개념 잡기도 쉽지 않습니다. 시간 안에서 땅에 익숙한 인류로서는 영원이라는 개념도 하늘이라는 개념도 피부에 와 닿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블로스의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면 달라집니다.

비블로스의 희소식은 왕국의 희소식입니다. 여기서 왕국이란 땅의 왕국이 아닌 하늘의 왕국입니다. 그렇다고 땅의 왕국과 동떨어진 하늘의 왕국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늘의 왕국이 땅에 임하여 땅의 왕국 체제가 하늘의 왕국 체제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비블로스에서 희소식 하면 왕국의 희소식, 곧 하늘의 왕국의 희소식이며, 새 유언의 희소식입니다.

그동안 인류 역사는 인간통치시대였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왕이 되고 대통령이 되고 총리가 되어 다스리는 정치 체제였습니다. 심지어 비블로스 옛 유언 시대도 인간 통치 시대였기에 옛 유언에 희소식(gospel or glad tidings)이란 낱말 자체가 없습니다. 인류는 인간 통치의 정치 체제를 충분히 겪어보았고, 그 시행착오를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습니다.

비블로스 새 유언 시대가 개막되면서 예수스 크리스토스는 왕국의 희소식을 선포하였습니다(맛 4:23). 하늘의 왕국의 통치 체제는 크리스토스가 왕들의 왕이시고, 왕가(에클레시아)가 그분과 함께 왕들이 되어 다스리는 정치 체제입니다. 인류가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정치 체제입니다. 새 유언 시대의 왕가가 출범하면서 이미 하늘의 왕국의 정치 체제는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완성된 것은 아니고 아직은 예행 연습 단계라 할 수 있지만, 이미 성취 과정에 들어갔다고 보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비블로스 희소식이 하늘에 속한 새 창조의 영역이라는 데 있습니다. 여전히 첫 창조에 속한 옛 지성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땅에 속한 희소식 개념은 비블로스 희소식 성취에 적지 않은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스어 유앙겔리온을 영어는 가스펠(gospel)로 번역하였고, 한글은 복음(福音)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영어 가스펠은 좋은 소식(good news)을 뜻하지만 일반 희소식과 구분하기 위해 고어 표기를 활용한 신조어를 채택하였습니다. 한글의 경우 일반적인 희소식과 구분하기 위해 복 된 소리를 뜻하는 복음(福音)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영어와 한글이 음역 대신 번역을 한 것은 잘한 것이지만, 굳이 신조어를 채택 하면서까지 구분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가스펠은 단지 좋은 소식을 의미하고, 복음은 복 된 소리를 의미할 뿐 정작 하늘이란 메시지가 빠져 있는 구분이라면 오히려 소통을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 희소식도 인간의 희소식 본능에서 나온 것이므로 차라리 구분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희소식 본능의 메시지를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왕국의 희소식이라는 개념은 하늘의 왕국을 이 땅 위에 성취하는 것이고, 땅과 하늘이 그림자와 실체의 관계이므로 그렇습니다. 전후문맥과 비블로스 용례에 따라 얼마든지 구분이 가능한 데다가 희소식 본능과 희소식의 실체 사이의 소통이 중요한 만큼 원래 의미 그대로 정확히 희소식이라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유앙겔리온이 한 낱말이듯이 가령 기쁜 소식이라는 두 낱말로 번역하기보다는, 희소식의 한 낱말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영어의 경우 가스펠은 구원의 희소식 개념으로 구분하여 번역하였지만, 가스펠 전도자(활 21:8; 엪 4:11; 팀둘 4:5)의 경우는 번역을 하지 않고 이벤젤리스트(evangelist)라고 음역을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가스펠이란 낱말이 개념혼란을 가져와 소통에 방해가 되고 이밴젤리스트란 음역도 혼란을 부추긴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독특하게 구분한 희소식을 일방통행 식으로 전파하다 보니 역효과가 나서 빛과 소금이 되는 데 실패한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점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차라리 인간의 희소식 본능에서 출발하여 희소식의 실체로 인도하는 것이 소통에 보다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한글의 경우 복음이라는 신조어로 번역한 것 역시 희소식 본능을 통한 소통에 실패하게 한 원인 제공을 하였고, 기복신앙을 부추기는 번역이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번역할 당시에 토착화 신학의 기조에 따라 번역한 데다가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무속신앙의 기복신앙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복(福)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워서 소통하기가 좋았겠지만, 이 땅에 속한 복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왜곡 현상이 나타났고, 하늘의 왕국을 이 땅에 성취하기 위한 실제적인 메시지를 놓치는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복음의 기초 위에 세워진 한국 기독교가 기복신앙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정확한 번역은 정확한 성취를 가져오지만, 잘못된 번역은 잘못된 성취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

희소식은 희소식입니다. 굳이 기독교 용어로 특정화해서 가스펠이니 복음이니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구분한 특정 개념을 일방통행 식으로 전도하고 선교하다 보니 많은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희소식은 어디까지나 희소식일 뿐이므로, 그 스펙트럼을 확장하여 인간의 희소식 본능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희소식 본능을 인정할 뿐 아니라 그 본능을 자극하여 희소식의 실체로 인도하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일방통행 식으로 외치기보다는 서로 마음을 열어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도록 개방의 장을 제공해야 마땅합니다.

희소식이 열린 대화의 주제가 되고, 희소식의 실체를 경험한 크리스천들이 변화된 삶의 열매를 보여주기만 한다면, 희소식 본능에서 희소식의 실체로 스스로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그동안 기독교는 이 점에서 실패하였고, 가스펠과 복음이라는 오역이 한 원인 제공을 한 사실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희소식을 희소식이라 번역한 바른 비블로스를 가지고, 쌍방 소통을 위한 대화의 장을 개방해야 할 책임이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왕국의 희소식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세심한 탐구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크리스천들 역시 땅에 익숙하다 보니 여간 해서는 하늘의 왕국의 실체가 피부에 와 닿지 않습니다. 이제부터는 정치 체제에 관심을 갖되, 옛 지성의 시각이 아니라 새 지성의 시각으로 새로운 정치 체제의 세부 내용을 비블로스에서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하늘의 왕국을 성취하는 데 앞장서는 왕가들이 되어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데 성공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