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세상
창조의 목적
[질문]
착한 사람이 힘을 갖는 세상은 가능할까요?
[답변]
시간의 최종 목표가 그것입니다.
착한 사람이 무시당하고,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냉혹한 현실은 시간의 과정일 뿐입니다. 인류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들은 시험의 시간, 성숙의 시간들이지만, 인간이 이해를 못해서 문제가 됩니다.
우선 착하다는 개념부터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착한 사람을 순진하고 이타적이어서 호구가 되기 쉬운 사람 정도로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비블로스에 의하면 비블로스에 기록된 엘로힘의 말씀 그대로 성취되는 것이 착한 것이며(겐 1:3-31), 따라서 말씀성취의 권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착한 사람인 것입니다. 착하다에서 착착이란 의태어가 나왔듯이, 일을 착착 진행하여 성공시키는 당당한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 해야 마땅합니다.
물론 말씀성취의 능력은 정직과 정의를 기초로 하므로, 부당한 방식으로 성취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불의 앞에서 소극적이거나 비굴한 사람도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비블로스 진리에 따라서 착하다는 개념을 정확히 재정립해야 합니다.
인간 세상의 희망은 착한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입니다. 세상이 죽음을 이기지 못하듯, 죽음은 시간을 이기지 못하며, 시간은 끝까지 기다리는 인간을 이기지 못합니다. 눈앞의 현실만 보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실 세상의 부당한 힘들을 보고 두려워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다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며, 결론을 내리기엔 아직 이릅니다.
착한 사람이 힘을 가지려면 비블로스를 알아야 합니다. 비블로스가 정확해야 거기에서 정상적인 성취권력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정확한 비블로스를 알고, 비블로스를 낭독하며(계 1:3), 그것을 들은 자들 안에서 믿쁨과 화합하기만 하면(히 4:2), 하늘에서와 땅에서 모든 권력이 그 착한 사람과 함께 있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맛 28:18-20).
착한 사람들의 세상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의 존재이유와 목적이 착한 세상이기에, 아무리 그 과정이 험난하고 불가능해 보여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엘로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들이 함께 일하여 착한 일을 이룬다는 사실입니다”(롬 8:28).
“And we know that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to them that love God, to them who are th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Rom. 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