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엘로힘 : 지배권주의 이름과 질문들
이름이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이름을 정확히 알고 부르는 것은 올바른 관계의 첫걸음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나만(naman), 그리스어로 오노마(onoma), 라틴어로 노멘(nomen), 영어로 네임(name), 한글로 이름, 한자로 성명 등은 대상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구분하는 수단이라는 공통의미를 지닙니다. 이름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가령 한글 이름의 경우 처음에는 토박이 말로 지었던 이름이 한자의 유입으로 한자 표기가 보편화되어 오늘에 이르렀고, 이름의 종류도 본 이름 외에 아명, 관명, 자, 호, 시호 등 다양합니다.
창조주의 이름은 독특합니다. 존재 자체의 초월성과 영원성, 그리고 피조물과 구분되는 거룩성으로 인해 이름 자체가 독특하고 유일무이하며, 이름 속에는 위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만큼 신중하고 졍확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절대자이신 엘, 창조주이신 엘로힘, 새롭게 부르기 시작한 이름들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첫걸음입니다. 폭넓고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이번 기회가 궁금한 질문들을 함께 나누는 뜻 깊은 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너희 아버지들의 엘로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제게 말하기를,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냐? 할 것이니, 제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해야 합니까?(탈 3:13)
엘로힘께서 보내신 것을 들었음에도 그분의 이름을 물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은 당시 백성들이 엘로힘을 보통명사로 인식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대화인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모세스와 백성들은 엘로힘을 일반명사(보통명사)로 인식하였기에 다시금 이름이 무엇인가의 질문을 제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창조주의 답변은, 나는 곧 나다: 나다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말하라(14절)고 하신 다음, 지배권주 엘로힘, 곧 아브라함의 엘로힘, 이사악의 엘로힘, 야코브의 엘로힘, 이것이 영원하도록 나의 이름이며, 이것은 모든 생명세대들을 위한 나의 기념물이다(15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답변의 의미는 이것입니다: 나는 존재 그 자체이므로, 엘로힘이 영원하도록 나의 이름이다. 존재 자체란 뭐든 성립된다는 것이니, 일반명사도 고유명사도 성립되며, 나는 너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된다. 엘로힘의 이름을 묻는다면 엘로힘이 나의 이름이니, 왜냐하면 나는 존재 자체인 나다이기 때문이다. 엘로힘이란 이름은 영원하도록 나의 이름이며, 모든 생명세대들을 위한 나의 기념물이다.
15절의 “지배권주 엘로힘”에서 지배권주는 지배권주일 따름입니다. 이름은 부르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일치합니다. 지배권주라 부르고 예호바라고 이해하는 것은 이름에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엘로힘이 이름입니다.
엘로힘은 복수형인 일반명사인 동시에 단수형인 고유명사입니다. 엘로힘은 히브리어 문법에서 쌍수형입니다. 일반명사도 맞습니다. 동시에 고유명사라는 사실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옛유언은 히브리어 엘과 엘로힘으로 기록되었고 이를 음역하여 엘과 엘로힘으로 번역하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다만 새유언은 그리스어로 기록되면서 데오스로 표기한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요.
파울로스를 비롯해서 당시 안티오키아의 형제들은 왜 엘과 엘로힘을 새유언에서 데오스로 기록했을까요. 아울러 제임스왕역본 번역자들이 옛유언과 새유언 모두 갓(God, god)으로 번역한 것은 오류라 할 수 있을까요?
일반명사로 보아 데오스, 갓으로 번역한 것은 오류가 아닙니다. 엘로힘은 세 분 엘로힘들과 말씀이 온 사람들인 엘로힘들(요 10:35)로 구성되므로 복수형 엘로힘 개념이 맞습니다. 동시에 단수형 고유명사 엘로힘 개념도 맞습니다.
그런데 유일하신 전능자 엘은 단수형인데도 데오스, 갓으로 번역했습니다. 유일하시므로 고유명사로 보아야 맞지만, 눈높이에 맞춰 일반명사화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의 이름들은 그 무엇이든 고유하므로 고유명사이지만, 나다(I AM)이시므로 일반화도 가능하며, 고유명사와 일반명사가 동시에 성립될 수 있습니다.
가령 엘의 의미인 전능자는 보통명사이지만 사실상 고유명사인데 왜냐하면 전능자는 오직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비블로스 용례에서는 엘과 전능자가 동시에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겐 17:1; 28:3; 35:11; 43:14; 48:3; 49:25; 탈 6:3; 숫 24:4,16; 욥 8:3,5; 13:3; 15:25; 23:16; 27:2,10,11,13; 33:4; 34:10,12; 35:13; 계 4:8; 11:17; 15:3; 16:7,14; 19:15; 21:22). 엘이 고유명사임을 재확인하여 일반명사 전능자와 병행하여 사용하였으나, 전능자 역시 고유하므로 고유명사가 성립되어, 교차확인 효과가 있습니다.
그만큼 창조주의 이름은 독특하고 유일무이하며 거룩합니다.
예수스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마지막 발언이 담긴 두 구절,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맛 27:46b)와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다니?”(맠 15:34b)를 보면,
예수스께서 간청하실 때 지배권주의 이름을 ‘엘’로 부르시는 생생한 현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들이 시 22:1의 성취임과 동시에, ‘엘(El), 엘로힘(Elohim)’의 음역에 대한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엘은 홀로 전능하신 절대자 이름이고, 엘로힘은 창조주 이름입니다. 당연히 고유명사이고, 고유명사는 처음 이름이 주어진 언어 그대로 음차하여 음역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막연히 초월자 개념의 보통명사(일반명사)로 이해하곤 하였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민족조차 보통명사로 이해하였으니 이방인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엘, 엘로힘을 음역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리스어로 데오스라 번역하였고, 라틴어로 데우스라 번역하였으며, 영어의 경우는 대문자로 시작하는 갓(God)으로 번역하여 소문자 갓(god)과 구분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한글의 경우는 하나님과 하느님으로 번역하였다가 논쟁 끝에 하느님으로 통일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스께서도 그리스어 번역인 데오스를 존중하여 사용하셨고, 사도들도 그렇게 하여 보통명사로 굳어지는 듯하였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상의 마지막 외침에서 예수스께서는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임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주목할 점은, 시 22:1의 예언을 정확히 성취하신 것이 십자가상의 외침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비교를 통해 보통명사인지 고유명사인지가 확인 가능합니다. 번역하였다면 보통명사이고, 음역하였다면 고유명사입니다. 엘리, 엘리는 히브리어이고, 엘로이, 엘로이는 아람어입니다. 맛싸이오스의 기록은 그리스어 기록이지만 예수스의 외침은 히브리어 외침 그대로 인용하여 기록한 반면, 마르코스의 기록은 역시 그리스어 기록인데 외침을 인용한 것은 아람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스께서 히브리인이셔서 히브리어로 외치신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아람어로 옮긴 것이 음역이라면 당연히 고유명사가 맞습니다. 히브리어 엘(El)이 아람어로는 엘라(Elah)인데 여기에 소유격 접미사 이(i)를 붙이면 히브리어 엘리(Eli), 아람어 엘라히(Elahi)이며, 엘라히를 그리스어로 음역한 것이 엘로이(Eloi)입니다. 결론은 마르코스의 아람어 인용은 히브리어 음역이며, 따라서 고유명사가 맞다는 사실입니다.
놀라운 것은, 홀로 전능하신 절대자 이름은 히브리어 엘이 맞고, 엘의 아람어 음역은 엘라이며, 엘라의 변형이 이슬람권의 알라입니다. 이슬람권에서도 알라를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이스라엘이 여전히 보통명사로 생각한다면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연둘 7:14)이라는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의 엘은 고유명사 이름입니다. 홀로 계신 엘께서 비블로스 게네시스 1장 1절에서부터 엘의 가족 이름인 엘로힘을 계시하셨습니다. 엘이 고유명사이듯이 엘로힘도 고유명사입니다.
엘(El)과 엘로힘(Elohim)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더불어 세 분 엘로힘들(아버지, 아들, 거룩하신 숨)은 하나라는 말의 의미는 기존의 삼위일체론이나 양태론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엘은 유일하신 전능자이시고, 엘로힘은 엘의 가족입니다. 엘의 가족이라 함은 일차적으로 아버지 엘로힘, 아들 엘로힘, 거룩하신 숨 엘로힘의 세 분을 가리킵니다. 이 세 분이 하나라는 말씀(요첫 5:7)은 세 분의 생각과 자유의지가 하나로 일치한다는 의미입니다.
7절의 하늘의 증거와 8절의 땅의 증거는 동일한 증거방식입니다. 하늘의 증거가 셋이듯이 땅의 증거도 셋이며, 이들 셋이 하나로 일치하여 증거합니다. 7절의 세 분이 하나라는 의미는 8절의 셋이 하나로 일치한다는 의미와 다름 아님을 재차 설명한 것입니다. 가령 영과 물과 피가 삼위일체나 양태론이 될 수 없듯이, 아버지와 낱말과 거룩하신 숨도 삼위일체나 양태론이 될 수 없습니다.
[3 = 1]은 오류이듯이, 삼위일체론(trinity)도 명백한 오류입니다. 그렇다고 일인삼역을 한다는 양태론도 오류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 분 엘께서 세 분 엘로힘들이 되셨고, 이 세 분은 영원히 세 분이십니다. 홀로 계신 엘께서 엘의 가족인 엘로힘들이 되셨다는 것은 가족의 진리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구원받아야 할 이름으로써, 하늘 아래 다른 어떤 이름도 사람들 가운데 주어지지 않았습니다.(활 4:12)
이 말씀을 보더라도 우리가 알아야 할 지배권주의 이름은 ‘예수스’가 유일하며, 엘/엘로힘, 데오스, 신, 하느님, 천제, 알라 등 민족마다 신을 부르는 다양한 단어는 존중되어야 하는 것 아닌지요?
구원자로서 유일한 이름이 예수스라는 것입니다. 구원이 필요할 때는 예수스를 불러야 마땅합니다. 구원은 필수이며 기초이지만, 구원이 전부는 아닙니다. 단지 죄 문제를 해결하였을 뿐입니다.
건축물의 기초만 완성하고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기둥과 벽체를 세우고 지붕을 씌우며 인테리어를 마무리하여 건물을 완성하여야 엘로힘의 영원한 계획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전능자 엘의 이름으로 모든 권력들이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야 하고, 엘로힘의 이름으로 엘로힘 가족의 신뢰와 희망과 사랑이 무르익어 성장과 성숙이 이루어져야 마땅합니다.
물론 인류 보편적인 창조주 개념이 막연하나마 한 분을 가리키고 있기에, 데오스, 데우스, 갓이 틀린 것은 아니며, 알라, 신, 천제, 하느님 등이 정확하지는 않아도 나름 한 분을 가리킨다면 무조건 틀렸다고 무시하거나 단죄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인류의 더듬어 찾는 노력을 존중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것이 오래 참으시는 엘로힘의 배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블로스가 확실히 보여주는 예수스, 엘, 엘로힘의 이름으로 인류가 돌아가야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궁극적인 의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구원에만 맴도는 초보적 삶의 수준에서 벗어나서, 보다 성숙되고 수준 높은 삶으로 나아가며, 완전함으로 전진하기 위하여 부활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엘로힘의 뜻입니다(히 6:1-3).
비밀인 그분의 이름(심 13:17-18)이 비블로스를 통해서는 명확히 계시되어 있고, 그것은 ‘엘로힘’과 ‘예수스’로서,
전능자의 이름인 ‘엘(El)’과 구원의 이름인 ‘야(Yah)’가 말씀성취를 위하여 계시되었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성취의 때가 오면, 그분의 이름의 비밀도 밝혀지고 이름에 담긴 메시지도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엘, 엘로힘의 이름이 현 시점에 드러나고 규명되는 것은 성취의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시점과도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엘은 전능자의 권력, 야, 예호바, 예수스는 구원의 권력, 엘로힘은 가족성취의 권력, 특히 거룩하신 숨 엘로힘은 말씀성취의 권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에게, 야코브에게, 엘 전능자(El Shaddai)의 이름으로는 나타났지만, 나의 이름 예호바(JEHOVAH)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않았다.(탈 6:3)
여기서 언급된 ‘엘 전능자의 이름’과 ‘나의 이름 예호바’는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니며, 이 구절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예호바가 고유명사 이름이라면 엘 전능자의 이름도 고유명사 이름입니다. 문맥상 같은 맥락, 같은 성격의 이름입니다. 예호바라는 이름은 예수스라는 이름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엘 전능자의 이름은 히브리어 엘 샤다이인데, 엘은 음역하고 샤다이는 번역하여 전능자라 하였기에 엘은 고유명사이고 샤다이는 전능자로 번역하여 보통명사로 처리하였지만, 전능자도 사실상 한 분을 가리키기에 고유명사화된 보통명사라 하겠습니다.
예호바의 경우 실은 요드헤바우헤(Tetragrammaton)라는 4자 자음이라서 발음을 할 수 없지만, 아도나이의 모음을 차용하여 발음한 것이 예호바입니다. 눈으로는 고유명사로 읽고, 소리내어 부를 때는 아도나이라는 보통명사로 발음합니다. 원래 부르는 것은 눈과 입이 일치하여 읽어야 맞습니다. 눈과 입이 불일치하여 부르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이런 히브리어 모순을 해결한 것이 그리스어 예수스로서, 히브리인에 국한되지 않고 인류 전체가 부르는 이름으로 확정되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할지라도 예수스의 재림 시점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영어 제임스왕역본(KJV)에서는 기지를 발휘하여 아도나이라는 보통명사를 로드(Lord)로 번역한 다음, 로드의 4자를 모두 대문자 처리하여(LORD) 고유명사화하였습니다. 눈으로는 고유명사로 읽고 입으로는 보통명사인 로드로 읽게 함으로써 예호바란 이름과 일치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눈과 입의 불일치라는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럴 바엔 대소문자 구분 없이 다 보통명사 로드로 부르고, 예수스는 따로 고유명사로 사용하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예호바의 확정 이름인 예수스는 죄에서 건져주시는 구원자를 뜻합니다. 하늘 아래 구원자의 이름은 오직 예수스입니다(활 4:12). 구원의 기초를 닦기 위해서는 예수스 이름을 불러야 마땅합니다.
엘 샤다이 즉 엘 전능자의 이름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절대 권력의 이름입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맞닥뜨릴 때 엘의 이름을 부르고, 전능자의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엘(El)의 아들과 엘로힘(Elohim)의 아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아담은 엘의 아들인가요, 엘로힘의 아들인가요? 그렇게 분류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홀로 계신 엘께서 가족 엘로힘으로 확장되셨는데, 엘께서 아버지 엘로힘이 되셨고, 아들 엘로힘을 득생하셨으며, 이 모든 것을 성취하신 분이 거룩하신 숨 엘로힘이십니다.
거룩하신 숨 엘로힘께서 천사들을 비롯한 영들의 창조를 성취하셨고, 엘의 아들 예수스의 득생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스께서 엘의 상속자이신 것과 마찬가지로 크리스토스 사람들도 엘의 공동 상속자들로서 엘의 아들들로 득생하시도록 성취하셨습니다.
엘로힘의 아들들이란 상속과 무관하며 거룩하신 숨 엘로힘의 아들들인 영들인데, 천사들이 그 예입니다. 이들은 엘의 아들들보다 지위가 낮은 존재들입니다(히 2:7-10).
따라서 아담은 본질상 엘로힘의 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엘의 아들로 지음받아 자유의지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엘로힘의 형상을 지닌 존재입니다. 물론 구원받은 후에야 정식으로 입양의 영을 소유하게 되지만 말입니다.
엘(El)/엘로힘(Elohim)의 이름이 성도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지배권주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부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사실 우리는 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부르곤 합니다. 그래서 비블로스가 이름을 정확히 계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름의 효과가 나타나고 이름의 권력이 행사되며 이름에 담긴 메시지가 정확히 성취됩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엘의 이름은 성취하는 권력이 있습니다. 인위적인 가족은 실패하여도 엘로힘 가족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엘로힘의 이름에는 가족성취의 권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배권주(支配權主)라는 고백은 단지 주(主)라는 고백 그 이상입니다. 법적으로 보장된 권력으로서 타인의 행위 없이 직접 객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소유권은 물론이고 점유권, 재산권, 인격권, 친권, 후견권 등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의미를 알고서 지배권주라 고백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천양지차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