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science 엘성
양심인가 엘성인가
양심은 도덕 규범이 아니라 창조주와 함께 아는 지식인 엘성이다. 착한 엘성은 비블로스 성취를 통해 새 창조를 완성하는 실질적 동력이며, 이것이 순수한 마음과 거짓 없는 믿쁨, 그리고 새사랑으로 이어지는 명령의 목적이다.
이제 명령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과, 착한 엘성과, 거짓 없는 믿쁨에서 나오는 새사랑인데:(팀첫 1:5)
Now the end of the commandment is charity out of a pure heart, and of a good conscience, and of faith unfeigned:
낱말 설명
양심은 양심이 아닙니다. 양심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면 낱말의 정확한 의미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어 순에이데시스(suneidesis)는 [sun together + eido to know]로 구성되어 ‘함께 아는 것’을 뜻합니다. 영어 컨시언스(conscience)도 [con together + science to know ]로 구성되어 그리스어와 똑같이 ‘함께 아는 것’을 뜻합니다. 모든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아는 본능적 지식을 가리키는데,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칸트를 비롯한 서양철학자들의 분석적 접근이나, 맹자를 비롯한 동양철학자들의 본성적 접근이나, 인본주의적 시각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한계는 인본주의적 시각의 한계이기도 하기에, 의견은 분분하고 다양할 수밖에 없지만, 속시원한 해결책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비블로스가 진리의 책이 맞다면, 비블로스 용례에서 마지막 희망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한글로 양심(良心)이란 번역은 비블로스 용례와 맞지 않습니다. 양심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인본주의 철학자 맹자(孟子)였습니다. 맹자는 성선설의 근거로서 타고난 선량한 마음을 제시하였고, 그것을 인간의 선천적 도덕 능력인 양심이라 불렀습니다. 사회적 의식과 공동생활의 존재방식인 도덕심은 맹자의 인본주의 개념입니다.
그리스어 순에이데시스와 영어 컨시언스의 ‘함께 아는 지식’이란, 해석에 따라 창조주의 지식이 될 수도 있고, 인본주의 사회성 지식일 수도 있어서 다소 애매모호합니다. 어쨌든 이것을 한글로 양심이라 번역한 것은 너무 멀리 나갔습니다.
비블로스 용례에서 이 낱말은 일반적 개념이 아닌 독특한 개념으로서, 오직 인간에게만 사용되고, 천사나 짐승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도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창조주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비블로스 용례에서 이 낱말은 절대자 엘의 본성을 의미하는 ‘엘성’이라 번역해야 정확합니다. 인간은 엘의 아들이고(뤀 3:38), 인간의 정체성인 혼(soul)은 창조주의 형상이며, 혼은 이성과 엘성과 자유의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함께 아는’ 엘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리스어 순에이데시스와 영어 컨시언스는 틀린 것은 아니지만 미완의 낱말이라 하겠고, 한글 양심은 인간의 도덕규범에 국한되어 오역에 가까운 번역입니다. 하지만 한글로 엘성이라 번역하면 비블로스 용례에 맞는 정확한 번역으로서 감히 그리스어나 영어보다 업그레이드된 번역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착한 엘성이라는 표현은 창조주의 영원한 계획을 가리킵니다. 착하다는 것은 말씀성취 곧 비블로스 성취를 의미하며, 인간에게만 주어진 엘성의 목적은 결국 착한 엘성이 되는 것입니다. 즉 착한 엘성을 통해서 비블로스를 성취하고 새창조를 완성하는 것이 창조주의 영원한 계획이라는 사실입니다. 선한 양심이라 번역하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누구나 엘성이 있습니다.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무신론을 선택한 사람들도 엘성을 부인할 순 없습니다. 아무리 종교인들이 싫어서일지라도 핑계할 수 없는 엘성의 증거가 있고, 어차피 인생은 시험입니다.
인간 본연의 자리, 인간의 제자리로 돌아가서 엘성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양심의 소리 그 이상의 엘성의 소리 말입니다.
엘성을 무시하다 보면 엘성이 마비될 수 있습니다. 엘성이 약화되어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 엘성이 뜨거운 쇠로 낙인찍히는 데까지 이른 자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크리스천 곧 크리스토스의 사람이 맞다면, 순수한 엘성 안에서 믿쁨의 신비를 붙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새로운 명령은 순수한 마음과, 착한 엘성과, 거짓 없는 믿쁨에서 나오는 새사랑(charity)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