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ity 새사랑
새생명의 사랑
영어 charity는 '자선'이 아니다. 비블로스는 이 낱말을 첫 창조의 사랑(love)과 구분하여 새 창조에 속한 사랑, 곧 '새사랑'으로 번역한다. 새생명에서 나오지 않은 사랑은 charity가 될 수 없다.
코첫 13:1
비록 내가 사람들과 천사들의 언어들로 발언한다 할지라도, 새사랑이 없으면, 내가 소리 나는 금관악기나, 울리는 심벌즈처럼 됩니다.
Though I speak with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and have not charity, I am become as sounding brass, or a tinkling cymbal.
낱말 설명
사람의 생명이 무르익어 나오는 것이 사랑(love)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십자가 죽음을 거쳐 부활의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면(born again), 그 새 생명에서 나온 사랑을 비블로스(바이블)는 새사랑(charity)이라 부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랑은 알아도 새사랑은 알지 못합니다. 사랑은 첫 창조에 속하고, 새사랑은 새 창조에 속합니다.
영어 채리티(charity)를 흔히 자선(慈善) 혹은 자선행위로 번역하는 것도 새 창조의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새로 태어난 크리스토스인들이, 주로 가난한 자들과 약자들에게 새사랑을 실천하는 모습들을 본 사람들이, 새사랑을 자선 개념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의 후손인 인류는 첫 창조에 속하지만, 부활하신 크리스토스와 새로 태어난 크리스토스인들은 새 창조에 속합니다(1Co. 15:45,47).
비블로스는 진리의 책으로서, 비블로스가 진실을 압니다. 인류가 진리의 책을 자세히 살피지 않기 때문에 첫 창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첫 사람 아담의 옛 생명만으로 인류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모든 시도들은, 한 마디로 인본주의입니다. 바벨탑 사건이 창조주를 반대하는 인본주의 도전이었듯이, 인류는 또 다시 바벨탑 사건을 재현하려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블로스의 결론은 새 하늘과 새 땅, 새 사람, 새 피조물이며(Rev. 21:1; Eph. 4:24; 2Co. 5:17; Gal. 6:15), 한 마디로 새 창조입니다. 창조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목하라, 내가 모든 것들을 새롭게 만든다. 기록하라: 이 말들은 진실하고 믿쁨차다”(Rev. 21:5).
비블로스가 의미하는 새사랑(charity)은 새 창조에 속하므로 인본주의 자선행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심지어 아가페 사랑과도 구분됩니다. 비블로스 새유언(NT)에서 그리스어 아가페가 115회 사용됐는데, 이 중 26회만 새사랑(charity)이고, 나머지 89회는 그냥 사랑(love)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사랑의 최고봉이 아가페인데 그 중에서도 새 창조에 속한 아가페 사랑이 채리티 곧 새사랑인 것입니다.
코첫 13:1의 본문 말씀에서, 사람들과 천사들의 언어들로 발언한다는 것은 영적 선물들(spiritual gifts)을 받았다는 것인데(1Co. 12:1-31), 그럴지라도 새사랑이 없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새사랑이 없다는 것은 구원받은 크리스토스인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즉 구원받지 않은 경우에도 영적 선물들을 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은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방언의 은사도 구원의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금관악기나 심벌즈처럼 소리는 요란하고 그럴 듯해도 사실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2절). 그러나 새사랑은 새 생명의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새생명의 특성은 무엇이고 어떻게 식별할 수 있는 지 알아보아야 할 차례입니다. 바로 코첫 13장 4절부터 8절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른 비블로스에서는 새사랑이라고 정확히 번역해 주었지만, 잘못된 성경들과 바이블들(Bibles)은 새사랑(charity)이 아닌 일반 사랑(love)으로 오역하여, 마치 일반 사랑의 특징들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들이 결혼식 축가 가사로도 사용되곤 합니다. 그 결과, 일반 사랑은 그림자일 뿐이고 새사랑이 새 창조의 실체라는 사실을 철저히 가려버렸습니다.
새사랑의 첫 번째 특징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물론 일반 사랑과 겹치는 특성들도 있지만(그림자로서), 진리 안에서 기뻐하며, 모든 것들을 견뎌내는 것과, 결코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지속된다는 특성들로 분명히 차별화됩니다. 인간적인 사랑과 달리 새사랑은 끝까지 배반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불법이 아닌 진리 안에서 기뻐하는 반응, 다시 말해서 비블로스 진리에 대한 반응 하나만 보아도 얼마든지 식별이 가능합니다. 인간은 영원하지 않지만 새사랑은 영원합니다. 옛 생명의 자선행위와 같은 인본주의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바래며, 불완전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지만, 새사랑은 영원토록 변치 않습니다.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
새사랑의 대표적인 모델은 지배권주 예수스의 사례입니다. 예수스의 생애는 새사랑의 실천 모델입니다. 모든 크리스토스인들은 예수스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비블로스 진리를 사랑하셔서, 비블로스 기록들에 따라서 사셨고, 죽으셨으며,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새 생명이 있다면, 우리 역시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비블로스 진리를 사랑하여, 비블로스 기록들에 따라서 살고, 죽고, 마침내 부활에 이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