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ptism 밥티스마

세례인가 밥티스마인가

baptism 밥티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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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티스마는 씻는 예식인 세례가 아니라 옛사람을 수장하고 새 생명으로 일으키는 명령의 진리이다. 바빌론 종교 유래인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착한 엘성의 응답으로 지상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비블로스 진리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만이 참된 밥티스마 성도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밥티스마에 의해 죽음 안으로 그분과 함께 매장되었으니: 그것은 크리스토스께서 아버지의 영광에 의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워지셨듯이,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생명의 새로움 안에서 걷게 하려는 것입니다.(롬 6:4)
Therefore we are buried with him by baptism into death: that like as Christ was raised up from the dead by the glory of the Father, even so we also should walk in newness of life.

낱말 설명

밥티스마를 모르면 비블로스 진리를 안다 말할 수 없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려면 비블로스를 알아야 하고, 비블로스를 알려면 반드시 밥티스마를 알아야 합니다. 밥티스마 성도들에게 맡겨진 것이 비블로스이기 때문입니다.

밥티스마를 알려면 밥티스마 요안네스가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그는 옛유언(OT,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의 마지막 성직자였으나, 모든 것을 버리고 광야에서 메뚜기와 야생꿀을 주식으로 삼으면서 새유언(NT, 신약)시대를 예비하였습니다. 그의 주 임무는 물로 밥티스마를 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모세스 법에 따른 정결례가 아닌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물로 죄를 씻는 세례(洗禮)를 주는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세례로 죄를 씻는다 해도 돌아서면 다시 죄를 짓기 때문에 진정한 회개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죄를 물로 씻으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죄 짓는 옛사람을 물로 수장시키는 밥티스마를 준 것이었습니다. 옛사람이 죽고 다시 태어나야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세례자 요안네스(세례요한)로 오해하였을지라도, 그는 밥티스마 요안네스로서 외로이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밥티스마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수장시키고 왕가(교회)시대의 새로운 길을 예비하였기에, 그를 밥티스마 요안네스라 부릅니다.

밥티스마는 아담의 생명에 속한 옛사람을 수장시키고, 크리스토스의 생명에 속한 새사람으로 일으켜 세운다는 사실을 가시적으로 증거하는 행위입니다. 첫 창조가 물로 시작되었으므로 물의 죽음으로써 첫 창조를 끝내는 마지막 매장절차라 할 수 있는데, 마지막이라 함은 옛유언시대의 모든 종교의식들이 밥티스마로 마감되기 때문입니다.

밥티스마는 죽음의 장례인 수장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물에 매장된 직후 물에서 일으켜 세워지기까지가 밥티스마입니다. 수장으로부터 일으켜 세워지는 것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첫 창조에 속한 옛사람은 물의 죽음으로 수장되었지만, 즉시 새창조에 속한 새사람으로 일으켜 세워지는 것이 곧 밥티스마인 것입니다.

밥티스마 진리는 곧 십자가 진리입니다. 물에 잠겨 죽는 것과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은 동일한 죽음입니다. 물에서 일으켜 세워지는 새생명까지가 밥티스마이듯이, 사흘만에 부활하는 것까지가 십자가 진리입니다. 밥티스마 요안네스가 이스라엘과 왕가를 하나로 연결하였듯이, 주 예수스의 십자가가 옛유언에 속한 이스라엘과 새유언에 속한 왕가를 하나로 만들어 한 가족, 한 민족이 되게 하였습니다(엪 2:14-17).

밥티스마는 명령의 진리입니다. 삶과 죽음을 좌우하고, 옛생명과 새생명을 결정짓는 명령의 진리인 만큼, 최초의 명령 그대로 밥티스마라고 음역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최초의 지상명령은 그리스어로 주어졌는데, 그 내용은 밥티스마를 주고 비블로스를 살펴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맛 28:19,20).

세례(洗禮)는 물을 뿌려 씻는 정결례로 비블로스의 밥티스마와는 의미도 다르고 내용도 다를 뿐 아니라 아예 그 뿌리 자체가 다릅니다. 세례는 비블로스에서 나온 것이 아닌, 바빌론 종교의 인신제물 악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람을 인신제물로 바치기 직전에 이마에 물을 뿌려 정결케 하는 종교의식이 세례의 시초였습니다. 특히 유아를 인신제물로 바치는 일이 당시에 성행하였는데, 거기에서 유아세례가 생겨났습니다. 로마 카톨릭(천주교)의 혼합종교 정책으로 인해 바빌론 종교 악습이 기독교 안으로 들어오면서 세례와 유아세례가 기독교 안에 뿌리내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비블로스 진리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이교신앙과의 혼합을 정당화하며, 밥티스마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바빌론 종교의 세례 및 유아세례로써 밥티스마 진리를 대체해 버린 것이 기독교 역사의 진실입니다. 음역한 밥티스마인가 아니면 번역한 세례 혹은 침례인가의 차이가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그 사소해 보이는 낱말 차이 때문에 인류역사상 최악의 대학살이 자행된 이유를 이제는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중세암흑시대 동안에만 유아세례를 거부했다고 이단정죄를 받아 화형과 학살을 당한 순교자들의 수가, 학자들에 따라 육천여만 명 혹은 구천여만 명이고, 로마 카톨릭이 최대로 축소 발표한 수가 천오백여만 명입니다. 이 엄청난 역사적 사실은 밥티스마 명령이 얼마나 중차대한지를 역으로 입증해 줍니다.

전심으로 믿어야 밥티스마를 받을 자격이 주어지고(활 8:37), 물뿌리는 세례가 아니라 물속에 들어갔다가 물에서 나와 올라오는 밥티스마가 맞다는 사실(활 8:39)은 비블로스(바이블)에서 직접 확인해 보면 누구나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유아세례는 비블로스에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유아는 믿쁨고백이 불가능한데다가, 아무 조건 없이 구원받기 때문입니다(맛 19:14; 맠 10:14; 뤀 18:16).

놀랍게도 이토록 명확한 근거구절(활 8:37)을 직접 삭제한 장본인이 오리게네스(오리겐)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최초의 신학자로서 플라톤 추종자였고, 플라톤은 바알숭배자였습니다. 밥티스마를 세례와 유아세례로 대체한 것이 다름 아닌 바빌론 종교에서 비롯되었다는 피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침례(浸禮)를 주장하는 자들이 있는데,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습니다. 물로 씻는 것이 아니라 물에 담근다는 개념은 맞지만, 여전히 형식적 종교의식에 머물고 있는 것은 틀렸습니다. 밥티스마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비블로스의 지상명령입니다. 명령 그대로 음역한 밥티스마가 맞고, 침례로 번역하면 안 됩니다. 특히 종교의식을 뜻하는 례(禮)자를 붙인 것은 치명적입니다.

밥티스마 명령은 십자가 진리와 일치합니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밥티스마를 받을 자격이 있고, 그렇게 해야 참다운 밥티스마 성도라 말할 수 있습니다.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

오늘날 참다운 밥티스마 성도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이 밥티스마 성도라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비블로스(바이블, 성경)를 직접 확인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의 활동들(사도행전) 8장 37절과 39절만 보아도 전심으로 믿어야 밥티스마를 받을 자격이 있고,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페트로스의 첫째 일반서신(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는 밥티스마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즉 정결례인 세례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형식적인 입교 절차가 아니라, 착한 엘성의 응답이 밥티스마라고 했습니다. 즉 구원받고 새로 태어난 사람에게는 정확한 비블로스와 비블로스 그대로의 성취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영원히 신뢰하는 착한 엘성이 생기게 마련인데, 그 착한 엘성의 응답이 있어야만 밥티스마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무효이므로 다시 밥티스마를 받아야 합니다. 침례를 받은 사람도 세례보다는 나을지언정 무효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시금 비블로스 진리대로 밥티스마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참다운 밥티스마 성도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바른 성경(비블로스)을 외치고, 킹제임스 성경을 주장하는 자들은 많지만, 착한 엘성의 증거와 십자가에 달린 증거가 없다면, 참다운 밥티스마 성도가 아니라고 분별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제임스왕역본(KJV)을 한국어로 번역하였다 해도 번역자가 밥티스마 성도가 아닌 경우에는, 그들의 번역을 바른 비블로스로 신뢰할 수 없습니다.

밥티스마 성도가 번역한 비블로스만이 바른 비블로스입니다. 그만큼 밥티스마와 비블로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지상명령의 골자가 밥티스마와 비블로스 살펴지키기인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